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항서/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문단 편집) == 2017년 ==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인 및 U-23 감독으로 선임되어 10월에 취임했다. 한국인 지도자로는 역대 4번째로 외국 성인 대표팀을 맡는 감독이 되었다. 처음 취임했을 때 [[베트남]] 현지에선 체력이 다소 약하다는 식으로 귀띔을 해줬다지만, 정작 박항서 본인이 선수들의 체력을 테스트해 본 결과 전원이 합격할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훗날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은 체력이 약하다'라는 이 말이 베트남에 전해져 내려온 뿌리깊은 선입견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축구선수를 시작할 때부터 언론과 선배들이 '우리는 체력이 약하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 왔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아예 심리적인 한계선이 자리잡아 버린 것이다. 일종의 [[학습된 무기력]]. 이것을 타파한 것도 박항서호의 선전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 히딩크 이전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이것과 비슷한 선입견이 있었는데,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히딩크는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체력'이라고 진단했고, 실제로 강력한 체력훈련을 통해 자신의 진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냈다. 분명 한국의 기술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어차피 단기간에 올릴수도 없는 문제고 유럽강팀이라고 브라질처럼 기술을 막 부리는 것도 아니다. 한국의 경우 강한 체력으로 압박하고 90분 내내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을 펼치는것이 유리하다.] 다만 선수단의 영양 관리가 미흡하여 리그 시즌이나 국가대표 소집 기간에도 아침식사를 베트남에서 즐겨먹는 [[쌀국수]]로 해결하는 등[* 베트남 사람들의 쌀국수 사랑은 대단해서,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 사람들이 미국으로 도피한 이후에도 한결같이 쌀국수를 아침식사로 먹어서 베트남식 쌀국수가 미국에 퍼졌을 정도였다. 문제는 쌀국수가 [[탄수화물]]이 거의 전부고, 한국에 퍼진 게 소고기 쌀국수라 그렇지 베트남 정통 쌀국수는 소고기가 아예 안 들어가기도 하며, 소고기 쌀국수라 한들 프로 레벨에서 요구되는 단백질 수준을 만족시킬 정도는 아니라서 운동선수가 먹기엔 아쉬운 식단이라는 게 문제] 영양공급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 협회]]에 개선 요청을 해서 삼시세끼 [[육류]], [[달걀]], [[우유]] 등의 단백질이 대거 포함된, 균형잡힌 식단으로 바뀌어 개선되었다. 선수들이 체력 면에서 더 좋아진 건 물론이고, 선수들 또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게 되어 좋아했다고 한다. 거꾸로 이게 와전되면서 박항서 감독이 '쌀국수를 아예 금지시켰다' 같은 카더라가 퍼져 있지만, 본인이 직접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으며 본인이 쌀국수를 가끔 즐긴다고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 팀 닥터로 불러온 최주영 의무팀장이 "박항서 감독님이 나한테 선수 부상 말고도 몸관리까지 맡겨서 난 아예 선수들에게 쌀국수를 금지시키고 [[스파게티]]를 먹이고 있다. [[도안반하우]]가 네덜란드의 [[SC 헤이렌베인]]에서 임대로 뛴 뒤 다시 베트남으로 오니까 식단의 중요성을 깨닫고 베트남 음식 대신 고단백, 탄수화물 위주로 식사 중"이라 얘기한 걸 보면 일단 단백질이 중요하니까 어느 정도의 식단개선은 했지만 최주영 의무팀장이 금지하기 전까지 '본인은' 금지시키지 않았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박항서 감독이 진단한 베트남 선수단의 근본적인 약점은 '''기술과 전술 이해도 부족.''' 그래서 박항서 본인이 직접 패싱 게임에 참여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지금 스쿼드에서 박항서 감독이 사용하는 전술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움직이는 선수는 [[응우옌꽝하이]]를 비롯해 [[응우옌꽁프엉]], [[판반득]] 정도를 제외하면 없을 정도이기 때문에, 강한 조직력과 높은 전술 이해도를 필요로 하는 [[4백]]은 아무리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통이더라도 맞지 않다고 판단해 과감히 포기했고, [[3-4-3]] 중에서도 전술을 이해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수비수가 없기 때문에 최후방 3백의 좌우를 일반적인 3백의 파이터형 센터백 2명이 아닌, 팀에서 볼 키핑과 컨트롤이 가장 좋은 미드필더 선수로 채워 빌드업을 시키고 대신 중앙 2미들을 왕성한 체력과 스피드를 갖추며 유사시 센터백 역할도 병행이 가능한 팀내 최고의 수비수로 세우는 역발상으로 공격과 수비가 질서있게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잡았다. 사실 이런 구성이 무적은 아니고, 강력한 피지컬로 3백을 압박할 수 있는 최전방 공격수를 가진 팀을 상대로는 빈틈이 벌어져서 2선 공격수들의 침투를 막기 어려워진다는 단점이 있으나, 베트남 대표팀이 당장 헤쳐나가야 하는 ASEAN 국가 or AFC 2~3차 예선급 국가들은 손흥민, 황의조같은 탈ASEAN급 [[크랙]]이 없기 때문에 과감히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이 문제로 부임 초기 베트남 기자들이 왜 포백을 안 쓰고 스리백만 쓰냐는 질문을 자꾸만 반복하자, 이에 박항서는 "[[프리미어 리그|EPL]]에도 스리백을 쓰는 팀이 많고, 스리백을 쓸 때 우리의 장점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묻고 싶다. '''포백을 쓸 때 우리에게 어떤 장점이 있는가? 그 답을 알려주면 나도 포백으로 전환할 생각이 있다'''"고 하며 스리백을 구식 전술이라 착각하는 기자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이는 팀 사정을 생각하지 않은 채 유럽이나 남미 축구를 무작정 따라하길 바라는 몰상식한 축구 팬들에게 일침이 되는 말이기도 하다.[* 프로 축구의 역사가 긴 유럽이나 길거리나 공원에서 축구를 마치 놀이처럼 즐길 정도로 일상화된 남미를 아시아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아직까지 아시아 축구는 세계 축구의 주류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변방의 위치에 놓여있는게 엄연한 현실이고 그 중에서도 동남아는 그 약한 아시아 축구 안에서도 최약체로 꼽힌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의 월드컵 본선진출이 도합 16회이고 중동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합해 총 11회의 본선진출을 했으며 호주조차도 무려 5번이나 나간 반면 동남아는 인도네시아가, 그것도 무려 88년이나 지난 1938년에 아시아 최초로 오른게 전부다.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나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로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진출했으며 아시아 월드컵 두 번째 본선 진출국이자 독립국 최초는 대한민국이다.][*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1938년 월드컵 본선에 오른 당시에는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으로 사라져서 모든 경기가 15강 전 토너먼트였다. 지금으로 치면 지역예선 탈락 본선 진출 실패. 토너먼트에서 단 한경기 치르고 탈락했는데, 그 후로 월드컵에 나오질 못해 역대 월드컵 최소경기 국가로 남아 있다. 인도네시아가 어떻게 1938월드컵 15개국 본선에 진출할수 있었나 하면, 당시 피파가 아시아 수준을 파악 못하고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하고만 맞붙기로 하였으나, 일본이 기권하는 바람에 무혈입성으로 월드컵 15개국 본선에 진출하였고, 그 결과 1라운드 15강전에서 헝가리에게 0:6으로 참패하며 탈락했다. 그 후로 피파가 1938월드컵 인도네시아 무혈입성 참패탈락과 더불어 그 후 한국도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만 이기고 1954월드컵 16개국 본선에 진출하였으나, 16강 조별리그에서 헝가리에 0:9, 터키에 0:7로 참패하며 탈락하자 피파는 아시아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인지하여 1978월드컵까지 아시아는 16개국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 유럽 또는 아프리카 또는 오세아니아와 경쟁을 치러야 16개국 본선에 진출 할 수 있게 바뀌어서 한국도 16개국 본선 월드컵에 진출 실패했으며, 1982월드컵부터 24개국 본선에 아시아+오세아니아 2장으로 확대되고 1986월드컵부터 24개국 본선에 아시아 단독 2장으로 바뀌어 한국이 진출할 수 있었고 이 1986월드컵부터 2라운드가 16강으로 바뀌었다.] 인도네시아조차 1938월드컵 본선에 오른 것이 유일한 월드컵 본선 진출 기록이고 베트남은 아직까지 그 인도네시아보다 축구 실력이 객관적으로 떨어진다는 평을 받는데, 자신들의 약한 실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남미나 유럽의 축구 클럽들이 포백을 쓰니까 장단점 분석 없이 무턱대고 베껴놓고 현실에 맞게 포기하니까 오히려 성을 냈다는 의미. 그런데 이는 [[거스 히딩크]] 감독이 취임했을 당시의 [[히딩크호|대한민국 대표팀]]과 유사하다. 당시까지 국내 축구인들은 "우리 선수들은 체력과 정신력은 뛰어나지만 개인 기량과 기본기가 부족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작 히딩크 감독은 반대로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준수하지만 경기 체력과 피지컬이 부족하고 멘탈관리가 허술하다"는 진단을 내려서 많은 이들을 의아하게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20&aid=0000083716|만들었다]]. 이 때문에 집중적인 체력 훈련과 피지컬 강화에 몰두하는 히딩크호를 향해서 "축구 연습은 안 하고 몸싸움만 시킨다."라는 언론의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 당시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면서 이런 과정을 모두 지켜봤던 게 박항서 코치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묘한 우연이다. 부임 당시엔 프로 무대에서 밀려나 실업 리그에서 감독을 하던 축구인을 데려왔다는 일부 팬들의 부정적 평가가 있었으나, U-23 대표팀을 이끌며 10년 동안 못 이겼던 [[태국]]을 원정에서 격파하면서 반대파를 침묵시켰다. 득점할 때마다 히딩크가 생각나는 화끈한 펀치 세리머니로 인기를 끈 것은 덤. 전임 응우옌 후이 탕 감독이 사임한 이유도 태국전에서 0:3으로 완패했기 때문이었고, 이에 앞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2차 예선에서도 태국을 상대로 2전 전패를 기록하자 그 여파로 당시 감독이던 미우라 토시야가 [[경질]]되기도 했다.[* 이후 베트남 리그 호치민 시티 FC 감독으로 취임한다.] 그만큼 난적이었던 태국을 감독으로 취임하자마자 격파하면서 입지를 확고하게 다진 것이다.[* 2017년 12월, 태국에서 개최한 M-150 컵 (참가 6개국을 둘로 나눠 조1위는 결승전, 조2위는 3위 결정전) 당시, 박항서는 선수단 파악을 위해 조별리그 1차에서 최정예 멤버를 선발로, 2차에서는 후보들을 선발로 내세우는 과감한 전술실험을 하였다. 결국 조 2위를 기록해 컵대회 3위 자리를 놓고 태국과 다투게 되었는데, 베트남 현지 축구팬들과 협회는 부임 두 달 만에 경질이야기를 꺼낼만큼 분위기가 싸늘해졌다고 한다. 이를 눈치챈 에이전트가 급히 박항서에게 전화로 베트남 사정을 전달해, 다행히 태국을 이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http://www.sportsseoul.com/news/read/711861|이 기사]]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